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는 병사들을 잡는 병사, 탈영병 체포조 ‘D.P.’를 소재로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부조리, 인간적인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오늘은 군부대 로케이션, 현살과 픽션 사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2 시즌 모두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단순히 병영 문화의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은 인물의 심리 변화와 긴장감을 촘촘하게 쌓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공간적 몰입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군부대, 관사, 잡초 무성한 훈련장, 탈영병의 숨는 도시 공간 등은 현실과 픽션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드는 느낌을 준다. 이번 글에서는 [D.P.]의 실제 촬영지로 알려진 군부대 세트와 외부 로케이션들을 중심으로, 드라마의 공간적 구성과 현실의 감정을 비교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구로에서 완성된 '군대의 진짜 얼굴' : 군부대 세트의 구성
[D.P.]는 많은 장면을 세트장에서 촬영했지만, 그 세트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지는 놀라울 정도다. 특히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폐쇄된 공장부지에 설치된 군부대 세트는 드라마 전반의 중심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기존에 창고와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들을 개조해 생활관, 행정반, 간부실, 위병소, 체력단련장 등 군대 내부 공간을 세밀하게 재현했다. 겉보기에 단순한 세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출입문에 부착된 군 표어, 생활관 창문에 달린 철제 방충망, 낡은 복도 바닥 타일까지 실제 군부대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훈련병들이 복도에서 얼차려를 받고, 생활관 안에서 갈등이 폭발하고, 병사가 몰래 부대 밖을 빠져나가는 장면까지 모두 이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으며, 제작진은 실제 경험담과 제보를 참고해 “가장 보통의 부대”처럼 보이도록 구현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그 공간을 낯설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현실의 군대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서 : 외부 로케이션의 사실성과 상징성
[D.P.]는 군부대 내부뿐 아니라, 탈영병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외부 공간들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어, 도망친 병사가 은신하는 모텔, 도심 골목, 인적 드문 산길, 버스 정류장 등은 모두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소들이다. 실제 촬영지 중 하나는 경기도 포천과 양주의 외곽 지역으로, 이 일대의 버려진 건물과 창고, 시골 마을 도로를 적극 활용해 탈영병의 불안과 도망치는 심리를 공간으로 표현했다. 특히 시즌 2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좁은 골목과 허름한 아파트는 군대와 사회를 잇는 회색지대로서의 역할을 한다. 병영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벗어났지만 자유롭지 못한 탈영병의 처지를, 이처럼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는 장소들이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또한 도심 속 경찰서, 병원, PC방 등 탈영병들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공간들도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설정 덕분에, 시청자 스스로가 그 뒤를 따라가게 만든다. 이 모든 장소들은 서울·경기·인천 인근 지역에서 촬영되었고, 일부는 촬영 후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거나 철거되었지만 당시의 풍경은 여전히 드라마를 통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공간이 전하는 감정: ‘보통의 공간’이 주는 특별한 서사
[D.P.]의 촬영지들은 대부분 평범한 장소들이다. 그 어떤 K-드라마보다 화려하지 않고, 이국적이지 않으며, 낭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군대’라는 집단 경험 안에서 그 장소에 대한 감정을 이미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장으로 만들어진 군생활관의 침대 배열, 구석의 선풍기, 사물함의 위치까지 모두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트리거가 된다. 반면, 군대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 고립성과 비상식적인 분위기가 외부인의 시선으로 각인된다. 외부 로케이션 역시 마찬가지다. 도망친 병사가 몸을 숨긴 골목은 평범하지만, 그 순간엔 가장 잔인한 긴장의 무대가 된다. 모텔의 한 방은 탈영병이 숨 쉬고 있는 마지막 장소가 되며, 그를 쫓는 D.P.조의 발걸음은 좁은 복도를 울린다. 이처럼 D.P.는 공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그것은 특정한 메시지가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파생되는 피로감과 무기력,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구해주지 않는 사회의 구조다. 공간은 그 모든 감정을 담아낸다. 무채색의 벽, 흙먼지 날리는 훈련장, 형광등 아래 조용한 생활관은 모두 현실을 고발하고 위로 없이 사실을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D.P.]는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도 평가받지만, 이 모든 것을 현실처럼 느끼게 해주는 핵심 요소는 바로 ‘공간’이다. 충실하게 재현된 군부대 세트, 일상적인 외부 장소의 활용, 그리고 그 공간에 실린 감정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병영물이나 범죄물이 아니라, 사회 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촬영지의 절제된 연출은 시청자에게 묻는다. “이 공간은 당신에게도 익숙한가?” “이 현실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기에, [D.P.]의 로케이션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우리가 외면했던 장면들을 공간으로 되새기게 만든다. 공간이 곧 서사이고, 풍경이 곧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