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는 도시는 수많은 한국 드라마의 배경이 되어왔지만, 드라마 ‘모범택시’는 이 익숙한 도시 풍경을 완전히 다른 감정으로 채색한다. 오늘은 드라마 '모범택시' 서울 도심의 복수극 속 익숙한 공간의 재해석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그저 바쁘고 복잡하기만 했던 도시는 이 드라마 속에서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의 감정을 품은 인물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재해석된다. 특히 ‘모범택시’는 평범한 골목, 회사 건물, 택시 차고지, 그리고 주거지 주변 등 아주 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사건을 펼치고 그 안에 극적인 서사를 담아낸다. 이는 단지 리얼리즘의 구현이 아닌, 복수극 특유의 비밀스러운 정서와 감정의 긴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이 드라마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고 활용되었는지, 주요 장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택시 차고지, 복수의 거점이 된 평범한 공간
드라마의 중심 배경 중 하나는 ‘무지개 운수’라는 가상의 택시 회사다. 외형상으로는 일반적인 택시 회사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감시 시스템, 감금 시설, 작전실 등이 숨겨져 있다. 실제 촬영지는 경기도 하남시와 서울 강동구 일대의 상업용 부지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은 드라마 속에서 인물들이 복수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일종의 사령부로 작동한다. 이 공간은 구조상 단층이지만 내부에 수직적으로 쌓인 레이어, 비밀문, 수납 공간 등 다양한 구획이 존재하며, 시청자로 하여금 ‘일상 속 숨겨진 정의’라는 설정에 몰입하게 만든다. 흰색 조명과 철제 구조물, 오래된 간판 등은 이곳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 있었던 공간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곳은 각 인물들이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고, 서로의 상처를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즉, 복수를 실행하는 장소이자 공동체의 안식처로서 기능한다. 제작진은 이 공간을 설계할 때 ‘최소한의 외부성과 최대한의 내밀함’을 기준으로 두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현실 공간을 차용하되 극적인 내러티브와 맞물리도록 연출한 대표적 사례다.
익숙한 도시 풍경, 낯설게 만들기 - 골목과 거리의 변신
‘모범택시’의 주요 사건들은 대부분 서울 시내의 골목, 아파트 단지 주변, 지하주차장, 구도심 지역 등 매우 현실적인 장소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학폭 피해자가 쫓기던 장면은 서울 중랑구의 한 오래된 주택가에서 촬영되었고, 부패한 법조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는 여의도와 서초 일대의 법률사무소 건물이 활용되었다. 이러한 공간들은 평소엔 지나치기 쉬운 장소지만, 극 중에서는 강한 서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재해석한 결과다. 특히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카메라의 움직임, 조명 배치, 앵글 전환을 통해 현실감을 살리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복수극의 미학을 전달한다. 고층빌딩 사이에 낀 낡은 상가, 아파트 옆 빈 주차장,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앞 공간 등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며, 이들이 평범한 공간을 배경으로 복수를 실행할 때 시청자는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도심 속 거리 하나하나가 ‘복수의 무대’로 탈바꿈하는 구조는 드라마 전체의 현실성과 감정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도심 공간에서 구현되는 사회 구조의 은유
‘모범택시’는 복수극이지만 동시에 사회 고발극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때 도시 공간은 단지 장면의 배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균형과 불의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예를 들어 대기업 회장의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의 고급 빌딩에서 촬영되었으며, 내부는 절제된 고급 인테리어와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권력의 냉정함을 상징한다. 반면 피해자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낡은 원룸촌이나 반지하 구조로 등장하고, 이는 인물 간의 사회적 격차를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모범택시’는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극명하게 다른 삶의 단면을 교차시킴으로써, 공간 그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상징으로 만들어낸다. 가장 극적인 예는 경찰서와 법정 장면인데, 여기에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법망을 피해가는지를 공간적으로 묘사한다. 넓고 밝은 검사실, 폐쇄적이고 갑갑한 유치장, 비좁은 법정 대기실은 모두 인물의 위치에 따라 감정의 온도를 달리 전달한다. 이처럼 ‘모범택시’는 도시 공간을 활용해 인물의 감정, 사건의 본질, 사회 구조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시청자는 ‘복수를 위한 택시’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가며, 서울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다양한 삶의 층위를 품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