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는 대체로 소비적이고 활기찬 이미지로 그려지곤 한다. 오늘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서울 구도심의 따뜻한 잔상, 상수동, 성산동, 당인리의 정서에 대한 내용이다.
홍대의 북적이는 거리, 강남의 유리 빌딩, 여의도의 금융가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이런 전형적인 도시 이미지를 벗어나 서울의 오래된 구도심을 배경으로 삼는다. 이 드라마는 어두운 조명, 좁은 골목, 낡은 건물들이 켜켜이 쌓인 상수동과 성산동, 당인리 일대의 공간을 통해 인물들의 고단한 삶과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감정을 보여준다. 도시의 외형보다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에 집중한 이 드라마는, 공간이 어떻게 서사를 이끌고 감정을 확장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상수동 골목길, 고단한 삶의 리듬이 배어든 장소
드라마의 초반과 중반 대부분은 상수동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이 지역은 홍대 인근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개발되어 있어 오래된 주택가와 좁은 골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주인공 박동훈이 살고 있는 집과 골목길은 실제로도 30~40년 이상 된 단독주택으로, 골목 사이사이로 전봇대와 가스관, 작은 마당이 엉켜 있는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 이 공간은 드라마의 주요 감정선인 ‘무겁고도 현실적인 일상’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골목을 걷는 동훈의 모습은 반복되는 일상 속 고요한 저항처럼 그려지며, 이 골목은 주인공이 세상과 마주하는 첫 번째 경로로 작동한다. 상수동의 적막하고 그늘진 거리,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이웃들의 인사, 골목 끝에 위치한 조용한 술집 등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이는 드라마 전반의 정서적 기반을 형성한다. 드라마가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낡은 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인물들이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구조적 배경이자, 현실이라는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다. 상수동의 골목길은 말 그대로, 이 드라마의 중심 정서가 서성이는 공간이다.
성산동 사무실과 당인리 발전소 주변, 도시의 침묵과 피로를 담다
동훈이 다니는 건축사무소는 실제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상가 건물 내 공간에서 촬영되었다. 이곳은 큰 도로와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어, 주변의 소음과 고요가 묘하게 교차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사무실 내부의 침묵과 외부 세계의 소란스러움 사이에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무실은 좁고 오래된 구조로, 직원들 간의 긴밀한 관계와 그 안에서의 갈등, 은근한 연대감을 드러내는 무대로 기능한다. 당인리 발전소 일대도 드라마의 주요 장면에 사용되었는데, 이곳은 마포구 내에서도 낡고 산업적인 이미지가 강한 장소다. 커다란 굴뚝과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한강, 그리고 그 위에 무심하게 놓인 다리들은 도시에 대한 피로와 무관심을 상징한다. 이곳은 특히 이지안이 홀로 시간을 보내거나, 무거운 감정을 꺼내는 장면에 자주 등장하며 도시의 차가운 면모를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발전소 주변의 공간은 인물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강화하면서도, 이상하게도 따뜻한 인간관계를 꿈꾸는 여백을 제공한다. 제작진은 이러한 장소들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도시 속 인간의 감정을 받아내는 ‘그릇’으로 활용했다.
도시의 그림자에서 피어나는 온기 - 공간이 주는 정서의 힘
‘나의 아저씨’가 보여준 서울의 공간은 냉혹하고 메마른 도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을 담는 장소다. 이 드라마에서 공간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갈등의 깊이를 전달하며, 희미한 희망이 스며드는 장면을 위한 무대가 된다. 박동훈이 걸어가는 퇴근길은 하루의 피로를 정리하는 통로이자, 지안과의 침묵 속 교감이 시작되는 장소다. 지안이 머무는 좁고 어두운 반지하 방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동훈과 함께 김치찌개를 먹으며 잠시 마음을 여는 소중한 순간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지 연출된 세트가 아닌, 서울의 낡은 골목과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통해 구현되며 시청자에게 진정성 있는 몰입을 유도한다. 공간이 주는 질감과 정서는 단순히 장면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야기의 리듬과 감정의 흐름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나의 아저씨’는 화려한 도시의 외양이 아니라, 그 속에서 소리 없이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명했고,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서울 구도심의 진짜 풍경이었다. 낡았지만 견고한 골목길, 삐걱이는 계단, 겨울빛이 드리운 전봇대 옆 의자 같은 것들이 바로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완성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