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해외 로케이션이 단순히 이국적 배경으로만 소비되던 시기는 지났다. 오늘은 드라마 '도깨비' 속 캐나다퀘백의 초현실적 공간감과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온 풍경들에 대한 내용이다.
특히 tvN 드라마 ‘도깨비’는 캐나다 퀘벡이라는 예상치 못한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마치 현실과 환상이 경계 없이 이어지는 듯한 독특한 시각적 감각을 만들어냈다. 고요한 풍경, 낮은 채도의 색감, 비어 있는 거리의 정적은 이 드라마가 추구한 ‘영원한 존재의 고독’과 ‘시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강렬히 부각시키는 도구로 작동했다. 퀘벡은 더 이상 단지 드라마의 배경이 아닌, 그 자체로 이야기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등장인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 글에서는 ‘도깨비’가 어떻게 캐나다 퀘벡의 공간을 활용해 비현실을 현실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퀘벡시티의 거리, 시간과 감정을 고정시키는 무대
‘도깨비’ 속 퀘벡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거리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중심이 된다.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단연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낙(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호텔이다.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이 호텔은 김신과 지은탁이 마주보며 대화하는 장면, 그리고 김신이 홀로 거닐며 고독을 곱씹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이 호텔은 외관 자체가 하나의 상징물처럼 기능하며,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존재성과 긴 시간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드라마는 이곳을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내면 감정의 배경으로 활용했다. 퀘벡의 오래된 돌길과 간판,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같은 디테일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공간 장치였다. 실제로 이 도시의 구시가지인 ‘올드 퀘벡(Old Quebec)’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시간감을 지닌다. 이 도시의 정적인 이미지와 소음 없는 거리들은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가진 슬픔, 기다림, 고독, 그리고 운명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극의 감정선을 더욱 깊게 만든다.
퀘벡의 계절과 색감, 판타지 감정선의 시각적 연출
‘도깨비’가 퀘벡을 통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미장센 효과는 계절과 색감에 있다. 퀘벡 로케이션은 늦가을부터 초겨울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는 드라마의 감정 기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노랗게 물든 단풍, 뿌연 안개, 이따금씩 내리는 눈, 그리고 차가운 회색빛 하늘은 김신이라는 캐릭터의 정서적 고립과 숙명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합한 배경이었다. 특히 드라마 후반부, 지은탁이 다시 퀘벡을 찾았을 때 보여준 하얗게 눈 덮인 풍경은 그리움과 회한, 그리고 시간의 반복을 함축하는 장면으로 연출됐다. 이처럼 색과 계절을 활용한 공간 연출은 ‘도깨비’가 단순히 서사를 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자체로 감정을 유도하는 고급 연출의 대표 사례다. 퀘벡의 거리들은 따뜻하면서도 서늘하고,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이중적 감정은 판타지 장르의 핵심인 ‘현실을 닮은 비현실’이라는 정서를 구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마치 김신이라는 존재가 현실을 살아가지만 본질적으로는 비현실에 속해 있는 것처럼, 퀘벡의 풍경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몰입을 끌어낸다.
한국 드라마의 공간 확장, 퀘벡이 증명한 ‘감정의 장소성’
‘도깨비’의 퀘벡 로케이션은 한국 드라마가 단순히 스토리 전개를 위한 장소를 넘어서, 감정을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통 해외 로케이션은 시청자에게 시각적 환기를 제공하거나 제작 규모를 과시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도깨비’의 퀘벡은 이와 달랐다. 드라마에서 퀘벡은 서사의 전환점이자 감정의 폭발 지점으로 기능하며,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에 깊이 관여하는 인물 같은 존재로 다뤄졌다. 또한 이 로케이션은 드라마의 시각적 콘셉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아름답지만 쓸쓸한’, ‘가까이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김신이라는 인물의 무한한 생애, 그 안에서 겪는 상실과 회귀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데 있어 퀘벡의 시공간은 다른 어떤 장소보다 설득력 있었다. 이는 한국 드라마가 더 이상 단조로운 내국 중심 공간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조율하기 위한 장소 선택과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물론 퀘벡이라는 공간이 한국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부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낯섦이 ‘도깨비’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잘 맞물렸다.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퀘벡을 직접 방문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순한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감정을 경험한 장소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