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SF 장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확장된 대표작 중 하나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고요의 바다’는 단순한 미래 서사가 아니다. 오늘은 드라마 '고요의 바다' 속 폐쇄된 공간과 미래적 공간, 충청도 소도시와 우주 기지의 연결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작품은 우주라는 낯설고 폐쇄적인 환경에서 벌어지는 임무 수행의 긴장감을 바탕으로, 동시에 지구에 남겨진 기억과 상처를 교차시키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특히 이 드라마는 SF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하이테크 배경뿐 아니라, 놀랍게도 충청도 내륙 도시의 적막한 풍경을 도입함으로써 우주 기지의 고립성과 심리적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이 대비는 드라마 속 서사의 밀도를 높이고, 공간의 성격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하나의 심리적 장치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이번 글에서는 ‘고요의 바다’ 속 주요 공간이 어떻게 인간의 내면과 한국적 정서를 반영하는 장치로 쓰였는지를 세 가지로 나눠 살펴보려 한다.
충청도 소도시의 정서, 우주로 이어진 감정의 뿌리
‘고요의 바다’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지만, 주인공 송지안의 과거와 동기를 구성하는 주요 장면은 충청도의 한 소도시에서 출발한다. 드라마 초반 송지안이 방문하는 병원, 옛 연구소,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는 여동생과의 추억은 대부분 충청 지역의 외곽 도시에서 촬영되었다. 이 공간들은 한산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갖는다.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도로, 비어 있는 병원 복도,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폐건물은 미래 서사와는 전혀 다른, 정지된 현재를 보여준다. 특히 이 장면들이 송지안의 감정과 직결되면서, 그녀가 ‘고요의 바다’라는 우주 기지로 향하는 정서적 단초를 제공한다. 단순히 과거 회상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슬픔, 죄책감, 단절감이라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한국의 소도시는 많은 콘텐츠에서 '과거의 상흔'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자주 쓰인다. ‘고요의 바다’ 역시 이 전통을 잇지만, 동시에 그 공간을 미래로 확장시키는 통로로 삼았다. 즉, 우주라는 장소로 향하는 이유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정서적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발해기지, 폐쇄된 공간의 극한 심리
드라마의 본격적인 전개는 달에 위치한 ‘발해기지’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은 산소와 물이 부족한 환경,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 속에서 극한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장소다. 발해기지의 세트는 철저히 폐쇄적인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좁은 통로, 비상등만으로 밝힌 복도, 반복되는 경고음 등은 등장인물의 심리적 압박을 극대화한다. 실제로 이 세트는 경기도 파주에 조성된 실내 촬영장에서 제작되었지만, 조명과 촬영 기법을 통해 우주적 고립감을 극적으로 재현해냈다. 그러나 이 폐쇄 공간은 단지 SF적 연출을 위한 것이 아니다. ‘고요의 바다’는 이 공간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신, 공포, 탐욕을 시각화한다. 구조적으로 탈출구가 없는 배경은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그 긴장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에 몰입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발해기지가 송지안의 과거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이다. 동생의 죽음, 폐쇄된 시설,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의 집착은 모두 이 공간에서 재현된다. 이로써 발해기지는 단순한 우주 기지가 아니라, 송지안의 내면이 투영된 상징 공간으로 작동하며, 동시에 현대 사회의 자원 경쟁과 윤리 문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공간 대비가 만드는 한국형 SF의 정체성
‘고요의 바다’가 인상적인 점은 바로 공간의 이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그 이질감이 하나의 감정선으로 연결되도록 구성했다는 데 있다. 흔히 SF 장르는 실제와 거리가 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이 드라마는 오히려 현실과 맞닿은 두 공간, 즉 한국의 소도시와 달의 폐쇄 기지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면서 관객이 감정적으로 밀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전통적인 헐리우드식 SF와는 다른 한국적 정서가 스며든 결과다. 익숙한 풍경에서 출발해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구성은, 관객에게 ‘이야기가 먼 미래의 허구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심어준다. 또한 드라마는 이러한 공간의 대비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자원 고갈, 계층 문제, 윤리적 선택의 딜레마를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예컨대 충청도의 폐병원에서의 침묵과 달 기지 내의 정적은 모두 '고요'를 공통 테마로 삼지만, 그 고요가 불안과 공포로 변해가는 과정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인간 심리의 본질을 드러낸다. 결국 ‘고요의 바다’는 물리적으로는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장소를, 정서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상처의 무대로 엮어냈으며, 이로써 한국형 SF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공간 설계 차원에서 제시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