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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그널' 시간의 경계를 넘는 공간들 - 구 경찰서, 폐터널, 과거의 집 등 장소의 시간 밀도 분석

by 킥마 2025. 5. 6.

시간을 건너는 무전기, 현재와 과거의 경찰이 협력하는 수사극,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공간들. 드라마 ‘시그널’은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다. 오늘은 드라마 '시그널' 속 시간의 경계를 넘는 공간들, 구 경찰서, 폐터널, 과거의 집 등 장소의 시간 밀도 분석에 대한 내용이다.

 

드라마 '시그널' 시간의 경계를 넘는 공간들 - 구 경찰서, 폐터널, 과거의 집 등 장소의 시간 밀도 분석
드라마 '시그널' 시간의 경계를 넘는 공간들 - 구 경찰서, 폐터널, 과거의 집 등 장소의 시간 밀도 분석

 

과거와 현재가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설정은, 서사의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공간이 가진 시간성, 혹은 ‘기억의 두께’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의 강점은 복잡한 플롯을 시각적으로 정돈해 주는 로케이션 선택에 있다. ‘장소’가 이야기의 핵심 도구로 작용하면서, 각 공간이 시간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번 글에서는 ‘시그널’에서 주목할 만한 주요 공간들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시간성과 정서 밀도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분석해본다.

 

낡은 경찰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감각적 허브


‘시그널’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은 단연 ‘경기남부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 사무실’이다. 이곳은 현재의 주인공 박해영이 근무하는 장소이자, 과거의 무전이 도달하는 기점이다. 실제 촬영지는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옛 안양시청 건물로 알려져 있다. 리모델링되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 외벽, 낮은 층고, 낡은 유리창과 책상 배치 등은 이미 시간의 층이 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간이 현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박해영이 이곳에서 무전을 받고 과거 형사 이재한과 소통할 때, 우리는 이 공간이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시간의 경계선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 조명이 주는 색감, 카메라 구도의 구식 필름 같은 질감 처리가 더해지면서, 현실 속 공간이 미스터리한 시간 허브로 재탄생한다. 미제사건이라는 주제 자체가 과거를 소환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이 사무실의 낡은 구조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극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적 장치다. 동시에 이곳은 현재의 경찰 조직 내부 문제나 인물 간 신뢰와 불신, 진실 추적의 중심축으로도 기능하며 서사 전개를 이끄는 무대가 된다.

 

폐터널과 범죄 현장, 시간 밀도가 가장 짙은 공간


드라마 ‘시그널’의 시그니처 장면 중 하나는 어둡고 오래된 폐터널에서 이뤄지는 무전 장면이다. 이 공간은 단순히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이상으로, 드라마의 주요 테마인 ‘시간을 넘는 단서’의 물리적 상징으로 쓰인다. 실제 촬영은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한 폐터널에서 진행되었으며, 사용이 중단된 이후에도 비교적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특유의 적막함과 어두운 질감이 화면에 효과적으로 담겼다. 이 터널은 박해영이 무전을 통해 과거로 접근하는 ‘포탈’ 역할을 하며, 시청자에게도 시간 이동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간 자체가 말이 없다는 것이다. 텅 빈 터널, 가끔 울리는 무전기 소리, 그리고 낮인지 밤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채도 낮은 화면이 결합되면서 ‘무언의 시간’이 공간에 응축된다. 드라마에서는 또한 여러 실제 범죄 사건을 모티프로 한 현장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소도시 외곽, 오래된 주택가, 버려진 운동장이나 공사장 등 ‘기억이 남아 있지만 현재는 기능하지 않는’ 공간들이다. 이런 장소는 단지 미장센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며, 인물들이 시간에 저항하거나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감정선과 연결된다.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 시간의 개인적 증거


‘시그널’에서 또 하나 중요한 장소는 바로 인물들의 집이다. 특히 박해영과 이재한의 과거, 희생자 가족들의 주거 공간 등은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잔재’를 상징한다. 예컨대 어린 시절의 박해영이 형의 누명을 믿지 못하고, 이후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는 집의 구조는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오래된 가구, 과거 신문과 서류, 한때의 가족 사진이 놓인 이 집은 감정적 정체 상태를 보여준다. 반면 이재한의 집은 점차 변화한다. 처음엔 수수하고 인간적인 생활공간이었지만, 사건을 쫓고 상처가 누적될수록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벗겨진 벽지 등이 드러나며 인물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하는 장치가 된다. 피해자 가족들의 집 또한 마찬가지다. 범죄의 기억은 범인에게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삶에 영원히 흔적으로 남으며, 집은 그 감정의 축적을 가장 진하게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다. 실제 촬영지는 수도권 외곽 지역의 오래된 주택가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익숙하지만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드라마가 공간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명제다. 사건은 잊혀져도, 공간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인물의 감정을 다시 현실로 소환하며, 관객에게도 정서적 동조를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