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등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성과를 남긴 작품이다. 오늘은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집과 계단 씬의 실제 장소 탐방기에 대해 공유할 예정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이다.
특히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 비 오는 날 등장한 계단 씬, 돼지슈퍼와 주변 골목길은 한국 사회의 계층 구조와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대표적 장소다. 이번 글에서는 그 실제 촬영지를 따라가며, 영화 속과 현실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자 한다.
송강동 반지하 – 기택 가족의 집, 그 현실의 얼굴
영화 속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은 어두운 조명, 습한 공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절망적인 풍경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 집은 실제로는 서울시 서대문구 송강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공간을 개조해 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장을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느껴졌던 건 "정말 영화와 똑같다"는 점이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영화 속에서 기정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던 창틀이 눈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영화처럼 지저분하거나 우울한 분위기라기보다는, 현실의 그 장소는 오히려 조용하고 깔끔하게 관리된 주택가였다.
반지하 구조는 여전히 동일했고,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만 보일 듯한 시선이 이어졌지만, 실제로는 작은 화분이나 빨래가 널린 풍경들이 더해져 어느 정도의 일상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면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곳이 기택 가족의 생활 터전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괜히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게 된다.
📍 Tip: 주소는 공개되어 있지 않지만, 송강동 주민센터 근처 골목을 중심으로 탐방하면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사진 촬영은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자하문 터널 계단 – 비 오는 날, 계급이 드러난 순간
기생충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는 바로 폭우가 쏟아지던 밤, 기택 가족이 박 사장의 집에서 도망쳐 내려오는 장면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사회적 하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이 되었고, 이 장면은 서울 종로구 자하문 터널 근처의 계단길에서 촬영되었다.
자하문 터널 인근은 북촌 한옥마을과 청운동 사이에 있는 오래된 주택가다. 계단을 직접 걸어 내려가면, 영화 속에서 느꼈던 그 무거운 공기와 비슷한 정서를 간직한 장소가 눈앞에 펼쳐진다.
계단의 경사, 주변의 낮은 담벼락, 어둡고 긴 골목길은 영화 속 장면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준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더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실의 계단은 생각보다 짧은 편이지만, 카메라 앵글과 장면 편집의 힘으로 인해 영화에서는 훨씬 더 길고 무거운 느낌으로 연출됐다. 영화 속의 시선으로 다시 이곳을 바라보면, 공간이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 Tip: ‘자하문 터널 계단’은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 북촌과 연계해서 산책 코스로 잡기 좋다.
돼지슈퍼와 주변 골목길 – 기정의 일상과 동네의 리얼함
기정이 담배를 사러 가던 골목길, 그리고 기택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던 동네 슈퍼는 바로 ‘돼지슈퍼’라는 실제 가게다. 이 장소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위치해 있으며, 영화가 개봉한 이후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돼지슈퍼 앞 골목은 좁고 경사진 계단길로 연결되어 있고, 주변은 오래된 주택들이 모여 있는 전형적인 서울의 구도심 풍경이다. 이곳에 서면, 기정이 능청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이웃과 마주쳤던 장면, 혹은 기우가 친구 민혁을 배웅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실제로 가본 돼지슈퍼는 영화와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간판도 바뀌지 않아 팬들에게는 마치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다. 다만 상점 주인분이 바뀌었고, 지금은 슈퍼 운영보다는 촬영지로 인식되어 방문객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이 골목 자체가 ‘기생충의 세계관’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분위기가 완벽하게 살아 있다.
📍 Tip: ‘돼지슈퍼’는 9호선 흑석역에서 도보 약 10분 거리. SNS 인증 명소로도 유명하며, 사진 촬영은 짧게 하고 주변 거주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생충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다. 그 안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들의 처지와 사회 구조를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장치였다.
이번에 직접 촬영지를 따라가며 느낀 점은, 현실의 공간은 그 자체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지 몰라도, 영화 속 맥락과 감정이 더해지면 아주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비록 반지하 집은 하나의 세트였고, 계단과 골목은 조명과 색보정으로 다르게 보였지만, 현실의 그 장소는 여전히 사회의 다양한 층위를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직접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깊은 여행이 된다.
기생충을 사랑한 팬이라면, 또는 서울의 이면을 탐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촬영지 여행은 꼭 한번 경험해볼 만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서울의 골목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다.